Home BEYOND THE STAGE 콜을 할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과 설레임 : 박말순 무대감독

콜을 할 때마다 느끼는 긴장감과 설레임 : 박말순 무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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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평생직장이란 말이 무색하다. 한 가지 전문분야에서 뻗어나가 다른 직업도 자연스레 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대감독, 대학교수, 극장장, 회사 대표. 24시간이 모자랄 거 같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박말순 무대감독. 그는 공연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그가 풀어놓은 무대감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말순 무대 감독이 극장장으로 있는 ‘대학로 자유극장’은 대학로에 있는 대표적인 소극장이다. 많은 소극장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로 자유극장’은 박 감독의 운영 하에 계속 리뉴얼되는 중이다. 극장 사무실에서 만난 박 감독은 연습실과 백 스테이지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Stage Manager, 무대감독!

무대 감독 일은 매우 다양해요. 일정 조율부터 연습실에서 연습 진행 및 배우나 스텝 케어하기, 리허설 진행, 공연 진행이 있는데, 그 중 공연진행이 가장 중심이죠. 에스엠 데스크

(Stage Managers Desk)에서 인터컴을 끼고 큐를 주고 공연을 시작하고 공연을 맺게 하는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극장 공연으로 오면 더 다양해져요. 공연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혼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죠. 무대전환도 하고 배우들 의상도 갈아 입혀주고 때론 마이크 체크도 해요. 배우 등장시키는 큐를 주고,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주는 무대 인사를 한 적도 있어요.

옛날에는 공연 끝나고 의상도 같이 빨고 소품도 고치고 그랬어요.

 

그는 무대감독을 세가지 키워드로 설명했다. 소통, 책임감, 시간관리. 이 세 키워드를 관통하는 힘은 그가 무대감독이란 직업에 쏟아 부은 애정과 열정이었다. 그는 각 전문 파트들과 소통을 잘 하기 위해 하나라도 자료를 더 보고 먼저 내용을 숙지하려고 했다. 공연 중에 사고가 났을 때는 침착하게 대처해서 공연을 무사히 지속시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러면서도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했다.

무대감독하면서 인생을 많이 배웠어요. 예전에는 입을 많이 열었다면 무대감독을 하면서 귀를 많이 열려고 노력해요. 또 사람들이나 각 파트의 일을 조율하고 시간 관리를 하다보니까 시테크(時tech) 좋아하게 됐고 제 삶도 시테크하게 되었죠. 한번은 <내 마음의 풍금>을 할 때였는데 배턴이 내려오면서 정지를 제때 못해 뒤에 달린 전구가 마구 흔들렸던 사고가 있었어요. 그 사고를 수습하면서 느낀

건 어떤 사고가 생겨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믿고 같이 공연하는 거구나라는 거였죠. 저는 콜링을 할 때마다 긴장감

과 설레임을 여전히 느껴요.

 

<달고나>에서 <레베카>까지

10여년 무대감독을 해오면서 그는 소극장 공연부터 대극장 공연까지, 창작 뮤지컬에서 라이선스 공연까지, 일반 관객 공연부터 어린이 공연까지 두루두루 섭렵해 왔다. 특히 뮤지컬 <달고나>는 그의 무대감독 데뷔작으로 애증의 감정이 서려있다. 반면 <레베카>는 대형 라이선스 작품으로 그가 가장 오래 했던 작품이다. <레베카>를 하면서 그는 무대감독으로서 한 단계 새롭게 도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달고나>를 할 때 조광화 선생님을 뵈었는데 마치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본 거처럼 너무 설레였어요. 그때 무대감독 입봉작이었는데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어깨뽕이 엄청 올라갔죠.(웃음) 이번에 <내 마음의 풍금> 집들이 콘서트를 하는데 많은 배우와 스텝들이 모여서 준비하고 있어요. 다들 집들이 콘서트에서 뭔가를 얻어 가는 게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제가 무대감독을 처음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소극장 뮤지컬이 많았고 뭔가 풍성하다고 느꼈어요.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기억될 만한 작품들이 많아서 대학로에 활기가 있었죠.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변한 거 같아요.

 

 

‘무대감독’이란 전문 분야의 현실

 

대학로 공연과 무대감독 일을 깊이 사랑하는 만큼 그는 현재 한국 공연계에서 ‘무대감독’이란 직종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무대감독은 조명이나 음향과 같은 다른 전문 파트에 비해 일의 성격과 업무의 범위를 규정하기 쉽지 않다. 무대감독 자체가 극장을 중심으로 있는 경우와 작품을 중심으로 있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제작사에 따라서는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무대감독을 맡기거나 아예 무대감독 없이 제작을 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정성은 고용과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무감독 후배들이 10년 전 제가 받던 페이를 그대로 받고 있고, 10년 전 제가 고민하던 문제를 그대로 고민하고 있더라구요. 부끄러웠어요. 뭔가 커리어나 능력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표준 임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향이나 조명처럼 협회가 활발히 활동을 해서 제 역할을 하고 대학 커리큘럼에 ‘무대감독’ 전공도 만들어 져야 합니다. 지금은 ‘무대감독’이란 수업도 몇 대학에 없는 실정이거든요. 후배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공부도 하게 해주려고 이것저것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그가 설립한 무대감독 매니지먼트 회사 숨(SMM)이다.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의 창구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무대감독들은 바쁘기 때문에 함께 모일 시간을 잡는 것 조차 어렵다. 그 와중에 박 감독은 후배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매주 목요일 밤 10시에 만나 스터디를 한다. 정말 무대감독에 대한 애정없이는 쉽지 않은 실천이다.

 

선배로 공연계에 남아있기

 

박 감독이 첫 직장이었던 세종문화회관 기술파트에서 일할 때였다. 그는 에스엠데스크에서 인터컴을 쓰고 공연을 진행하는 무대감독을 이때 처음 보았고 가슴이 뛰고 전율할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무대감독이 무대를 지휘하는 카리스마에 매료된 것이다.

지금도 제가 인터컴을 쓰고 ‘스탠바이’라고 하면 스텝들이 샤샤샥 움직이고, ‘고’라고 외치는 순간 무대가 열리고 조명과 음악이 돌아가고 셋트가 바뀌고 극이 진행되면 굉장한 희열을 느껴요. 하지만 사실 무대감독은 숨어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와 스텝이 잘 할 수 있게 서포트를 하는 사람이에요. 때로는 개그맨처럼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잘 다독이기도 해야 하는 자리에요. 겉모습만 보고 잘 모르고 덤볐다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까 오래 못 버티는 경우를 봤어요.

 

작년부터 박말순 감독은 대학로 자유극장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무대감독으로서만 극장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직접 극장을 경영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대학로 자유극장의 운영을 맡으며 그는 로비와 객석을 모두 리모델링했다. 좀 더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작업이었다. 6월엔 연극열전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드웨어가 갖춰졌다면 이젠 소프트웨어로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박 감독이 버티고 있는 무대감독과 극장장 일은 힘들지만 배울만하고 도전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박 감독 같은 사람이 선배로 남아 끌어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글. 방세주 기자 penseuse@stagekey.co.kr

사진. 이현주 기자 teo@stageke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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