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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시선> 주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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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첫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대 위 배우들은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관객 중 일부는 머리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 일순간 당혹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미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라는 이 한 줄의 글귀에 저마다의 시선을 투영하고 그 시선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세 명의 엇갈리는 진술을 보여주면서 연극 <그날의 시선>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주민진 배우는 ‘김도준’이라는 인물로 하여금 ‘배우 주민진’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선을 제시했다.

시리고도 아픈 김도준이라는 인물로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많은 것들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직면하게 한다. 많은 것을 공부해야했고, 많은 것을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는 주민진 배우. 이 배우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극적인 하룻밤> 이후 오랜만에 연극이다. 소감이 어떤가

개인적으로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는 구분을 두고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그저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재미있는 소재이기도 했고, 제가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제가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됐고요. 두 번째 연극이라는 것은 저에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됐고, 그로 인해서 또 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마음이에요.

‘재미있다’라고 느꼈던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대본을 읽고 나면 그 캐릭터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들이 쉽게 드러났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제가 작업해오던 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부분에서 끌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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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과 해왔던 이전의 작업과는 다르게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원캐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새로운 영역이지 않나

선배님들께 폐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어요. 다 같이 모여서 토론이나 공부를하기전부터, 선배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들에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배우집단 ‘하고 싶다’에서는 연기 트레이닝을 주로 한다고 들었다. 이번 연극 준비를 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모임 때 대본을 들고 가서 안 풀리는 부분에 대해서 상의를 한 적이 있어요. 다 같이 읽어보고 ‘자기라면 어떻게 하겠다’는 조언을 많이 해줬죠. 아직도 캐릭터를 완성시켰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혼자 생각했던 것 보다는 조금 더 채워진 상태로 공연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에 시놉시스만 보고 왔다가 공연 내용을 보고 놀라신 분들도 많다. 치정, 강간 등 연습하면서도 어려웠을 소재였을 것 같다

강간이라는 소재 자체가 공감하기 쉬운 소재는 아니잖아요. 분명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많이 끌렸던 것도 사실이에요. 쉽게 접해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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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진의 시선에서 본 ‘김도준’은 어떤 인물인가

김도준은 어떤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오랫동안 마음이 닫힌 상태로 살아온 인물이에요. 그러다가 조윤주가 될 수도 있고, 박정구가 될 수도 있는 자극에 의해서 너무 급작스럽게 인생의 기로가 바뀌게 되죠.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최병호 같이 센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김도준에게 더 끌렸던 것인가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을 해보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을 배우로서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두 작품 연속 애정에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만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어찌되었든 다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관심 받으면서 살고 싶어 하니까요. 그런 것들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결국 부정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데, 최강구라는 역할은 삐뚤어졌다가 좋은 쪽으로 돌아왔다고 한다면 김도준은 정반대의 결말을 보여주게 되죠.

김도준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가면서 참고하거나 포인트로 삼은 것들이 있는가

이미지 적으로 영화 <홀리데이>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외치는 독백신을 많이 참고했어요. 사실 김도준이라는 역할도 사회적 기준에서 봤을 때‘미쳤다’ 혹은 ‘미치지 않았다’를 판단하기는 어렵거든요. 마찬가지로 <홀리데이> 에서도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은 아니에요. 이 사회 때문에 구석에 몰리고 몰리다가 발악을 하게 되는 그 모습이 김도준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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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준이라는 인물도 ‘사회에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과 ‘사이코패스’의 경계가 모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의 경계는 애매하더라고요. 저도 최대한 미치지 않은 사람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미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구석에 몰린 사람으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정신적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인거죠.

같은 사건에 대한 세 명의 시선을 보여주려면 쉴 새 없이 호흡을 따라가야 할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를 내려오거나 분장실에 들어가는 사람 없이 다섯 배우 모두 같이 호흡을 하고 있어요. 감정을 이어 나가는데 있어서 그 부분들이 많은 도움이 돼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조윤주가 건넨 돈을 받고 만다. 이때부터 김도준은 사회의 불의와 이미 타협했던 것은 아닌가

사실 저도 처음에 그 부분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인간의 이면성’ 이라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를 납득시켜 나갔던 것 같아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모습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은 청결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반대의 감정은 마음속에서 심하게 눌려있다고 생각해요. 남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 그 반대쪽에는 자신이 숨기고 싶은 모습이 존재하는 거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1초만에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조윤주라는 자극에 의해서 정반대에 억눌려있던 것들이 흘러나온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김도준은 왜 자신까지 파멸로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복수 방법을 택한 것일까

연출님 의도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이야기인데, 남자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은 자신의 여자를 빼앗겼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강간이라는 더러운 방법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윤주가 계속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이게 과연 강간죄가 될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극중에서도 “치정사건으로 넘겨야 되겠습니다.”라고 경찰이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아무리 강간이라고 주장을 해도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면 처벌을 할 수가 없어요. 어쩌면 김도준의 계획이 거기까지 미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의 정복욕 같은 것도 있었던 것일까

정복욕도 있었을 거예요. 내가 이루지 못했고, 접근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손을 뻗어서 내가 그들을 굴복시켰다는 생각. 그래서 저한테 키워드는 ‘슬픈 승리감’이었어요. 내가 이겼다고 계속 자신을 납득 시키려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슬프고 힘든 상태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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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이것만은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들이나, 이 부분에 집중하고 봤으면 하는 것이 있는가

작품에서도 얘기를 하지만 맞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살다보니까 저 또한 무언가 정의내리고 답을 내리려하는 경우가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경험한 것들로 답을 내려놓고 그 시선으로 무언가를 지켜보게 되고요. 연출님께서는 진실이란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한편으로 저는 진실은 없고 ‘개인의 시선만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똑같은 것을 보고도 느끼는 것들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좀 더 열린 생각도 할 수 있고 다른 시선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가 맞는 건데?’라고 묻는 건 또 다시 답을 내리려는 시도잖아요. 그것이 아닌 ‘바뀔 수도 있구나’라는 열린 마음을 가져가시면 어떨까싶어요.

<그날의 시선>을 통해 주민진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관객들이 많았다. 그동안의 이미지가 비교적 고정된 편이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쉬울 때는 없었나

그동안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을 모두 보여드렸었다면 저는 더 이상 보여드릴게 없을 거예요. 이미 구축이 되어있는 어떤 이미지를 천천히 바꿔나가는 것도 정말 즐거운 작업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6개월만 쉬어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이 날 이렇게 생각하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오만한 생각인 것 같고요. 항상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아쉽지는 않아요. 오히려 누군가의 머릿속에 제가 기억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사실 그렇잖아요. 제가 뭐라고. 한 사람 한사람의 인생이 다 소중한데, 많은 인생 중의 하나일 뿐인 저에게 다른 인생이 찾아와 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창작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다

라이선스 작품에서는 저를 잘 불러주지 않으시더라고요(웃음). 농담이고요. 일단 라이선스가 이미 만들어진 무언가에 제가 만든 것을 덧씌우면서 빠르게 완성시켜 나갈 수 있다면, 창작 작품은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조금 더 저로부터 시작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사실 어떤 작품이든 스태프들, 연출자, 다른 배우들과 함께 어떤 가상의 인물의 인생을 되짚어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매력 있게 느껴져요. 왜냐하면 실존하지 않았던 상황을 현실에서 있었던 것처럼 구성하고, 거기에 있던 인물들을 끄집어내서 무대 위로 올리잖아요. 감히 말씀드리는데, 그 자체가 정말 철학적인 일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왜 이런 생활을 하게 됐고, 이런 길을 걷게 됐을까를 생각하다보면 인생에 대해 겸손해지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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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연기생활을 한지 10년이 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이 기간 동안 제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좋은 분들, 대단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저의 장점이 있긴 해요. 제가 뭐가 부족한지를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노력해야하는지도 알고요. 얼마 전에 배우집단에서 ‘겸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토론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겸손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없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사실 ‘이제부터 겸손하게 행동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그건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다는 가정 하에, 남들에게 스스로를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겸손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제가 뭐가 부족한지를 알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러 인터뷰에서 ‘버틴다’,‘버텼다’라는 말을 한 것을 봤다. 힘들었던 적이 많았던 것인가

일 년에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일이 너무 어려운걸 아니까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건 말 그대로 버티면 되지만,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 때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버팀이라는 게 꼭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열심히 잘 버티고 즐기면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글. 이하나 (bliss@stagekey.co.kr)
사진. 이현주 (zumreed008@naver.com)
사진제공. 예스투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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